구독자님, 어서오세요.

공연장 옆 잡화점 혬점원입니다. 

지난주 월요일 오전, 한국에도 제66회 그래미 시상식의 결과가 전해졌습니다. 올해 그래미에서 가장 화제가 된 수상자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아닐까 싶어요. 본상 최고의 영예인 ‘올해의 앨범상’을 최초로 4차례 수상한 대기록을 세웠다고 하죠.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명문대에 그녀에 관한 강의가 개설되고, '테일러노믹스'라는 새로운 신조어가 탄생되는 등 그녀는 이제 새로운 사회 문화적 현상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클래식 분야의 수상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작년 11월 말, 잡화점에서 들려드린 토마스 아데스의 ‘단테’와 유자 왕의 <The American Project>가 각각 최우수 오케스트라 연주상과 최우수 클래식 기악 독주상을 받으며, 잡화점의 적중률이 100%를 달성했습니다! 저 이제 돗자리 깔아도 되겠어요~ 😆 수상작들을 훑어보면 요즈음 그래미 어워드가 현대적이고 미국적인 색채를 지닌 작품들을 선호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티스트나 작품의 가치가 트로피의 개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시상식이나 콩쿠르의 의의는 그전까지는 잘 알지 못했던 보석 같은 작품이나 아티스트를 발견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요? 

저희 잡화점을 통해서도 구독자님의 취향을 탕탕 저격하는 음악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93번째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구독자님, 올해부터 디즈니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이 만료되었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정확히는 1928년의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이 2024년 1월 1일부터 풀린 것이라 하는데요. (디즈니와 저작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궁금하신 분은 여기서 확인 🔗) 2024년부터 저작권이 소멸 된 것은 미키마우스뿐이 아닙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프로코피예프 음악의 저작권도 풀렸는데요. 프로코피예프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나 올해 저작권이 풀리게 된 것이죠. 오늘은 클래식 음악의 저작권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해 볼게요. 

👩‍⚖ 클래식 음악도 저작권이?

클래식 공연을 주로 올리는 저희 잡화점이지만, 공연을 진행하면서 저작권료를 항상 체크하고는 하는데요. 생각보다 저작권이 만료되지 않은 작곡가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20~21세기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하죠. 저작권 보호기간이 사후 50년이냐, 70년이냐 헷갈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요. 예를 들어, 1943년에 사망한 라흐마니노프의 저작권은 1993년까지 50년간 보호 대상이었지만, 1971년 사망한 스트라빈스키의 저작권은 70년간 보호 대상입니다. 이는 한국에서 2011년 개정되어 2013년 시행된 저작권법 때문인데요. 1962년까지 사망한 저작자는 개정 전 법에 따라 저작권을 50년간 보호받았으나, 1963년부터는 개정 후 법의 영향을 받아 사후 70년간 저작권을 보호받습니다. 쇼스타코비치(1975년 사망), 스트라빈스키(1971년 사망)의 저작권은 아직 살아있는 것이죠.

🌍 나라마다 다른 저작권법

어라, 뭔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분명 프로코피예프의 저작권이 올해 풀렸다고 했는데? 프로코피예프는 1953년 사망했으니 1963년 이전 사망한 저작자에 속하니까요. 네, 맞습니다. 한국에서 프로코피예프의 저작권은 이미 2004년에 풀렸습니다. 저작권 보호 기간에 대해서는 베른 협약에 체결되어 있는 세계 주요 국가들이 대체로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만, 국제 저작권 협약에 늦게 합류한 미국은 몇몇 작곡가의 작품들에 다른 기준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1975년 이전의 소비에트 연방(러시아) 저작자들의 저작권이 보호되고 있지 않아 새로운 저작권 기준을 산정하였고 프로코피예프는 올해가 돼서야 미국에서 비로소 저작권이 풀리게 된 것입니다.

🩰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과 <신데렐라>는 저작권 만료 예외?

한편, 프로코피예프 협회(Prokofiev Estate)는 지난 1월 프로코피예프의 옛날 악보를 사용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신데렐라> 악보의 새로운 버전들이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이것은 공동저작물로 판단되어 공동제작자의 저작권이 여전히 존재 중이며, 출판 저작물의 경우 초판 이후 95년간 저작권이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프로코피예프의 일부 음악들은 아직 법적인 보호 아래 있다는 것이죠.

알면 알수록 복잡한 저작권의 세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겠죠. 저 묘점원도 내공을 좀 더 쌓은 후, 다음번에는 저작인접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소개해 드릴게요.

A음으로 조율하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플루트가 목관악기인 까닭은? 

구독자님,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혹은 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하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길 때가 있으신가요?🧐 오늘의 일지에서는 알고 들으면 더욱 즐거운 클래식 지식과 비하인드를 소개합니다. 

🔊 오보에의 A음이 공연을 좌우한다?!

오케스트라 연주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있죠. 바로 악기 조율을 위해 부는 오보에의 A(라)음인데요. 이젠 표준음이 된 이 소리, 왜 하필 ‘오보에’의 ‘A음’일까요? 겹리드를 사용하는 오보에는 현악기에 비해 온도, 습기 등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해요. 따라서 음정의 변화가 미세할 뿐만 아니라, 소리가 수십 명의 단원들에게 잘 전달된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따로 현이나 키를 누르지 않아 안정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개방음들 중 비교적 많이 겹치는 A음이 표준음으로 정해졌다고 알려져 있죠. 여담으로, 하이든은 무대에서 들을 수 있는 조율 소리를 교향곡 선율에(!) 녹이기도 했답니다. (출처: 📕쾰른음대 교수들이 엄선한 클래식음악에 관한 101가지 질문)

🎼 오케스트라의 두 이름, ‘필하모닉’과 ‘심포니’의 차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단어는 유료 회원을 대상으로 음악회를 개최하는 ‘필하모닉 협회’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주로 귀족들이 만든 협회는 ‘음악(Philos)을 사랑하는 모임(Harmonikos)’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9세기엔 협회들로 인해 보다 큰 규모의 연주회가 개최되었다고 해요. 한편,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회원제가 아닌 일반 오케스트라로, 입장료를 받고 전통적인 프로그램의 연주회를 꾸밉니다. 함께 소리를 낸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심포니아’로부터 유래되었죠. 다만 현재는 ‘필하모닉’과 ‘심포니’ 모두 큰 구별 없이 사용되곤 합니다.

🎷 금속의 탈을 쓴 목관악기

금속으로 만들어진 플루트가 목관악기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역사가 긴 악기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플루트는 오래전, 나무 피리 형태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19세기 이후, 독일의 악기 제작자 테오발트 뵘에 의해 환경 변화에 강한 금속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죠. 사실, 플루트는 금관보다 목관악기의 소리내는 방식과 가깝습니다. 입술을 진동하여 소리를 내는 금관악기와는 달리 플루트는 목관악기처럼 바람을 불어 관 속의 공기를 진동시키죠. 한편, 처음부터 놋쇠로 만들어진 색소폰도 관 속에 공기를 불어 넣어 소리내는 목관악기라는 사실!

🎻 혹평받은 차이콥스키 협주곡, 슈퍼스타가 된 사연

“악취를 귀로 들을 수 있는 연주가 있구나!”

오늘날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이 작품은 발표 당시 잔인한 혹평을 받았습니다. 차이콥스키가 곡을 헌정하려던 당대 바이올린 신, 레오폴드 아우어도 난이도가 연주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거절했다고 해요. 무려 3년이라는 시간동안 무대에 올리지 못한 이 음악은 아돌프 브로드스키에 의해 처음 선보여졌습니다. 다만 초연 당시 연주 수준은 처참했는데요. 참혹한 평을 받고도 브로드스키는 꾸준히 연습을 이어갔고, 4개월 만에 곡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며 오늘날 콘서트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출처: 📕클래식 비스트로: 입문자를 위한 솔티클래식의 음악 편지)

[EVENT 📚] 책 『클래식 비스트로: 입문자를 위한 솔티클래식의 음악 편지』

📕 원현정 지음 / 한스미디어 출판

매년 2월 14일이 다가오면 잊고 살다가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념일이 있죠?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으로 마음을 전하는 날, 밸런타인데이입니다. 매달 14일을 기념일로 정해 선물을 주고받는 다양한 형태의 포틴데이(fourteen day)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기념일이라 할 수 있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하며, 오늘의 BGM은 달콤 쌉쌀한 초콜릿을 닮은 음악으로 채워볼게요. 🍫

🎵 에릭 사티 - 아몬드 초콜릿 왈츠

신고전주의 선구자로 활약한 프랑스 근대 작곡가 에릭 사티의 작품은 드뷔시, 라벨 등 프랑스 젊은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거대한 스케일의 곡들이 주를 이루던 후기 낭만주의 음악 속에서 최대한 기교를 덜고 간결한 음악을 고집했는데요. 오늘의 BGM 역시 1910년대 곡이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모던한 감성을 지니고 있답니다. ‘아몬드 초콜릿 왈츠’는 1분이라는 짧은 길이와 단순한 표현으로 에릭 사티의 특징을 확실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제목을 연상시키는 달콤한 선율로 몽글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요. 😊

🎵 레이첼 포트만 - 영화 <Chocolat> OST 중 Minor Swing

레이첼 포트만은 1996년, 영화 <엠마 Emma>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곡가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작곡가입니다. 영화 <초콜릿 Chocolat(2000)>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 사운드트랙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아름다운 OST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950년대 프랑스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초콜릿 가게 주인인 여주인공 비안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따뜻한 스토리는 물론이고 초콜릿을 소재로 한 만큼 다양한 초콜릿의 향연으로 오감을 자극하는 영화예요. 모든 곡이 명곡이지만 둥점원은 마치 달달한 초콜릿을 맛본 후의 황홀함을 표현한 듯한 1번 트랙 ‘Minor Swing’을 적극 추천합니다. 😘